수원고등학교
개교100년역사관
수원상업강습소 시기
1908년 수원상업회의소가 洪建燮(수원고 초대교장 홍사운 선생의 엄친) 洪敏燮(초대이사장 홍사훈 선생의 엄친) 梁聖寬 金興善 申駿熙 등에 의하여 설립되었고, 이듬해인 1909년에는 수원상업회의소의 부속사업으로 상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에 관한 강습을 목적으로 ‘수원 상업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수원상업강습소는 수원상업회의소의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주간과 야간에 두 개의 과를 설치하고 주간 보통과에 30명, 야간 보통과에 80명을 모집하였는데 보통학교 졸업 이상자에 한하여 입학을 허가하였다.
설립 이후 꾸준히 강습소의 위상이 높아져 지역민의 사랑 속에 발전하고 있었는데 1915년 7월 15일 일제는 이른바 조선상업회의소령을 공포하여 같은 해 10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수원상업회의소는 1916년 4월 해산되었다. 따라서 수원상업강습소는 재정적 지원이 끊기면서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강습소를 계속 운영하다가 강습소의 이름을 ‘화성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고 학령과만자(學齡過滿者)의 제학교(諸學校) 입학 준비나 고등보통학교(高等普通學校) 정도의 학식을 전수하는 데 목적을 두고 학원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주간에는 보통과, 중등과, 고등과를 설치하였고, 야간에는 초등과 전수과(專修科)를 두고 운영되었다. 이때 재학생은 160명이었고 수업연한은 3년이었다.

강습소에서 화성학원으로 개명하면서 교육의 목표도 상업의 지식, 기능의 강습에서 벗어나 고등보통학교 정도의 지식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화성학원의 변모와 발전에 따라 학원의 모습은 달라졌다. 따라서 1927년에는 주간 학생이 190명, 야간 학생이 240여명에 달하여 전체 학생 수는 430명에 이르게 되었다.

학교의 모습이 점차 커가자 교실증축 등 운영의 어려움이 커져 가고 수원상업회의소가 해산되면서부터 적극적 재정 지원도 끊겨 많은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몇 차례 폐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화성학원의 이런 실정은 이 지역 뜻있는 유지들의 공동 관심사가 되었고 급기야는 모금을 통하여 돕기도 하였다. 지역 유지들이 학교를 살리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지원도 하고 재산을 기부하기도 하며 경영난을 극복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이 지역의 대부호 중의 한 가문인 홍씨 문중에서 많은 금전적 지원을 하여 운영에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지역 발전을 위해서나 배움을 통하여 애국을 계몽해야 한다는 지사들의 뜻은 오로지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이와 같은 식자들의 통일된 의견들이 하나의 힘이 되어 화성학원의 존립 가치가 되었고 동시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등불과 같은 숭고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었다.